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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팬티 입고 호텔 로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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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1:10:03

<133> 선남과 나무꾼녀 (下)


새벽인데도 해운대 앞바다에는 잠을 잊은 선남선녀들이 줄잡아 백여명 정도는 눈에 띄었다. 남녀가 엉겨 붙어 있는 야한 모습도, 백사장을 내려다 보고 걷기만 하는 외톨이의 쓸쓸한 모습도 해운대는 가슴으로 부둥켜 않은채 쏴아∼쏴아 나즈막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벌써 여름이 됐구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해운대는 7∼8월의 풍경을 자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그만 먹어도 될 회 한접시를 또 시키고 백사장 한켠에 둘러 앉았다.


소금기 머금은 해운대 새벽 공기 그 자체 또한 맛깔스런 안주였다. 가끔씩 팔등신의 미인들이 미끈 미끈한 다리를 내놓고 백사장을 거닐고 있는 것이 목격되면 쓸데 없이 주파수를 던져보는 주포스맨이 있는가 하면, 바보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는 주포스맨도 있었으니 잠인들 오겠는가.바로 이즈음 한쪽에서는 누구도 모르는 문제의 드라마가 차근 차근 연출(음흉한 생각은 금물)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최민수, 배용준, 최수종, 원빈도 흉내낼 수 없는 2003년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날 바로 그 연기가 완벽하게 소화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한 주포스맨이 술을 마시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사장을 뛰기 시작했다. 해운대 백사장 한바퀴를 돌아온 그는 다른 주포스맨에게 같이 뛸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뛰어 갔는데 따라간 사람만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한시간 쯤 지났을까 나머지 일행은 그가 알아서 숙소(0라000호텔)로 돌아 올것으로 믿고 자리를 파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이 새벽녘 꿈속에 빠져 있을 무렵 호텔 로비에서는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아까 백사장을 달리던 이 친구가 트렁크 팬티와 런닝만 걸친채 물에빠진 생쥐마냥 여관도 모텔도 아닌 호텔에 나타난 것이다. 자신이야 술에취해 몰골이 어떤지 몰랐겠지만 그를 쳐다본 사람들은(각자 생각)비명을 지를 수 밖에. 그것도 숙소를 찾기위해 그 차림으로 인근 호텔 두곳을 뒤졌고 도로까지 활보하고 다녔으니 하느님이 웃지않았겠는가.


드라마는 이렇게 전개됐다. 백사장을 달리던 이 친구 몸에서 열이나자 갑자기 옷을 벗고는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기에 이르렀다. 50미터는 갔을까 숨이차 백사장으로 올라와보니 몇호실은 생각나는데 무슨 호텔인지 모르겠더라나. 방향감각을 잃은 이 친구 자신이 어떤 차림인지는 까맣게 잊고 반대편 0선00호텔로 무작정 향했던 것. 당당하게 305호실을 찾은 이 친구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니 누가 문을 열어주겠는가. 한참후 얼굴도 모르는 사나이 한명이 문을 열고는 이 친구의 몰골에 놀랐는지”하노 센생아 정신차려야 겠스모니다(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단지 일본말이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음).”며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일본인 투숙객이었다고.


“죄송합니다”며 90도로 절하고 0선00호텔을 유유히 걸어 나와 0라000호텔로 향했다. 술기운은 부끄러움도 최면도 다 막아주는 방패가 됐다. 씩씩하게 숙소로 돌아온 이 친구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트를 이용해 진짜 305호실을 찾았을 때가 새벽 5시경. 너무도 태연하게 호텔로 들어오는 그를 본 사람들은 박수갈채 대신 민망의 눈길을 보냈다. 우리가 봐도 미치고 펄쩍뛸 일이었다. 에고 술이 웬수지 다른 죄가 있겠는가. 바지도 신발도 자켓도 모두 해운대에 선사하고 팬티하나 런닝하나 달랑 걸치고 온 그를 우리는 ‘2002 해운대 수영 1호 손님’으로 해운대실록에 기록했다. 참! 잊어버린 바지속에 지갑도 들어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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