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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1일 종로 5가에 김승호 회장이 개업한 보령약국이 그룹의 모태다. 손님이 원하면 약재를 구하러 사방으로 자전거로 뛰어 다니던 그는 1963년 10월 1일에 보령약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대표적인 약품으로 겔포스가 있는데 1975년 첫 선을 보인 이래 30년 넘도록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2001년 겔포스엠으로 마케팅대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보령제약 '겔포스'는 36년간 국내 제산제 시장의 선도품목으로 성장하며 속쓰림, 위산과다, 위염, 가스제거 등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한국인의 위장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중 ‘겔포스’는 지난 1975년 첫 선을 보인 이래 33년간 ‘한국인의 액체위장약’으로 사랑 받아왔다. 용각산의 성공으로 단숨에 선두권 제약사로 도약한 보령제약의 창업주 김승호회장이 해외 순방 중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액체 위장약을 보고 기술 제휴를 통해 탄생한 것이 겔포스다. 프랑스 비오테락스社와 1972년 기술 제휴를 체결한 후 철저한 기술도입 및 검증과정을 거치기 위해 3년이라는 긴 시간의 준비단계를 거쳐 1975년 6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 겔포스(gelforce)는 콜로이드성 겔제제를 뜻하는 겔(Gel)과 강력한 제산효과를 의미하는 포스(Force)가 합쳐진 말이다. 국내 생산 첫 해 매출이 6000여 만원에 그쳤지만 휴대ㆍ복용의 간편한 팩 타입 포장을 처음 선보인 데다 우수한 약효와 공격적 마케팅으로 4년 뒤인 1979년에는 무려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제약업계에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의 주인공들이 출현해 ‘위장병, 잡혔어!’를 외치던 광고는 유명하다. 겔포스는 출시 몇 해 전 빅히트를 기록했던 ‘용각산’과 함께 오늘날 보령제약이 있게 한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겔포스가 한참 매출을 올리고 있을 때는 길거리에 나가면 겔포스 껍질을 밟을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고, 안양 공장의 생산라인은 철야로 풀가동을 해도 공급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였다. 이후 겔포스는 33년간 ‘주머니 속의 액체 위장약’으로 국내 제산제시장의 선도품목으로 성장하며 속쓰림, 위산과다, 위염, 가스제거 등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한국인의 위장약’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재까지 생산된 수량도 지구를 4바퀴 이상 포장할 수 있는 16억 포에 이르고 있다. 겔포스는 시대적인 수요에도 잘 부합한 제품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야근, 스트레스, 음주 등 위장병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회 복용 분량으로 소포장 되어 있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겔포스의 뒤를 이어 2000년 새롭게 선보인 겔포스엠은 겔포스의 성분 및 효능효과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지난 2000년 10월에 선보인 제품이다. 겔포스의 약효 및 사용 편리성에 인산알루미늄, 수산화마그네슘, 시메치콘을 처방해 소화성 궤양환자는 물론 장기간 와병환자들도 변비나 설사 등의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겔포스엠’의 ‘엠’은 마그네슘 성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령제약 중앙연구소에서 4년 여의 연구개발과 2년 여의 임상실험을 거쳐 탄생한 겔포스엠은 위보호막 형성작용이 더욱 강력해졌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산제 중에서는 유일하게 조성물 특허를 받기도 했다. 자체조사 결과 현재 겔포스엠은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일반의약품 제산제 시장 79.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상표선호도는 82%, 소비자인지도는 98.2%까지 기록하고 있다. 한편 겔포스는 현재 중국으로 수출되는 완제 일반의약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중국 내에서 연간 1백억원 이상 판매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제산제 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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