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인상없인 재정안정화 요원

창간 45주년 특별기획2/대한민국 건강보험, 길을 묻다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

  
작년 한해 건강보험에서는 1조3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연말 누적적립금 9000여억원은 1주일 남짓한 보험급여분에 불과했다. 정책당국, 시민사회단체, 의료계 모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 적자는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음’ 또는 ‘지출에 비해 수입이 적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일반 예산과 달라서 지출 규모 자체가 의료공급자와 환자 사이에서 결정되는 불확실성을 가진다. 건강보험 적자를 ‘지출에 비해 수입이 적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즉, 지출에 상응한 건강보험 재원의 확보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의 복지 논쟁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서 재원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 많다. 건강보험에 한 없이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다시 의료공급자와 환자 사이에서 결정되는 의료비 지출로 관심이 모아진다. 지출 효율화의 여지는 더 없는 것일까? 과연 이들 사이에서 결정되는 의료비를 지불자인 공단 또는 정부가 그대로 따라만 갈 것인가? 의료비 지출과 이를 위한 재원의 조달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건보재정 안정화 방안을 강구해본다.

지난 10년간 건강보험 급여비는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계속해왔다. 2005년 11.5%, 2006년 16.4%, 2007년 14.4%의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고, 2008년에 6.9%로 증가세가 약간 둔화되는 듯하다가 2009년에는 다시 13.0%로 올라갔다. 조금 더 분해해 보면 수가인상률은 연평균 2.0%인데 1인 진료량 증가율은 연평균 7.6%나 됐다. 즉, 수가는 어느 정도 억제되었는데 진료량이 늘어서 보험급여비가 늘었다. 그 중에서도 1인 진료일수 증가율의 평균은 3.0%인데 1일 진료강도 증가율의 평균은 4.4%이었다. 이러한 진료강도의 증가는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그리고 의료기술의 발달 등과 같은 불가피한 부분도 있고 필요 이상의 진료에 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를 잘 선별하는 것이 과제다.

지출은 건강보험의 급여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존재 가치가 보험급여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데 있다면 급여의 확대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개선할 점 또한 많다. 필요 이상으로 찍어대는 영상진단의 낭비는 심하다. 각종 고가치료재 또한 급여비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조제료, 조제기본료, 의약품관리료, 약국관리료, 복약지도료 등 구분하기도 힘든 많은 항목으로 지불되는 조제에 대한 행위료 또한 정비돼야 한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막고 건강보험 청구에 있어서의 부당,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행정적 노력도 배가돼야 한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 일변도의 지불방식 하에서는 양질의 의료, 의료의 정상화가 필연적으로 의료비 급증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의료 이용의 증가가 통제의 기전 없이 그대로 의료인들의 수입으로만 돌아간다면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이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의료비의 부담을 의료비를 지불하는 국민과 이를 수입으로 하는 의료인들이 분담하는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

포괄수가제는 의료인들로서도 박리다매식 의료 남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행위별수가제가 유지되는 부문은 건강보험급여의 상한(cap)을 정하는 방식을 결합함으로써 의료비 팽창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주된 재원은 보험료다. 건보수입의 80% 이상이 보험료로부터 온다. 보험료의 적절한 인상 없이는 재정안정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서구 선진국의 높은 보험료율을 고려하면 국제 경쟁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건강보험료가 기업에 주는 부담은 아직은 높지 않다. 또한 보험료가 단기적으로는 노동비용을 높이지만 높지 않은 가격, 적정 수준의 보건의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안정과 기업 경쟁력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보험료 부과기반’을 확대, 재편해야 한다. 지역가입자들의 불만 중의 하나는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에도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점이었다. 소득파악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대리변수로 다양한 기준을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타당한 불만은 아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는 제도의 수용성을 낮추는 요인이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보험료 부과 대상을 연금소득, 금융소득(이자소득, 양도소득, 주식양도차익 등), 부동산임대소득 등으로 분산,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정부지원액은 법의 의도대로 보험료 수입의 20%가 사후정산 절차를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국고지원액이 각 개인의 보험료에 얼마나 지원이 되는지를 통지하는 것도 제도 수용성 내지는 징수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담배세에 의한 지원 외에도 주세 등의 추가적 재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담배나 주류가 타인의 재원부담을 늘리는 외부비경제성을 가진다면 이러한 제품의 소비에 세금(sin tax)을 부과해 잠재적인 가격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다.
지출증가 따른 재원확보 최우선 과제로
과잉진료 유발 행위별수가제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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