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구로병원, 죽음 문턱 앞에 선 프랑스인 살려내

국내 응급의료시스템, 중환자 집중치료시스템이 만들어 낸 기적

지난 2일 오전 7시경, 9월말 출장으로 잠시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인 다니엘 나파르씨(66세, 남)는 갑자기 극심한 기침과 구토,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고 다급했던 아내는 호텔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했다. 나파르씨를 중증응급환자로 인지한 구급대원들은 곧장 환자를 국가 지정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으로 옮겼다.

희미하게 의식이 있던 환자는 병원 도착 직후 심정지가 일어났고, 의료진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CPR 4분 만에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심정지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 도중 한 번 더 심정지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생사를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은 다시 한 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기적적으로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잠시 출장을 왔던 터라 환자의 의무기록이 전무한 상황에서 심정지의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오로지 환자의 상태만을 바탕으로 적절한 상황판단과 조치를 해나갔다.

나파르씨는 응급중환자를 위해 별도로 마련된 응급중환자실로 빠르게 옮겨졌다. 일반병원이 아닌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운영 중인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혈압상승제를 고용량 사용하고 인공호흡기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신장내과 전문의와 곧바로 논의해 24시간 지속적 혈액투석(CRRT)을 시작했고, 호전의 기미가 없어 흉부외과의 협진으로 신속하게 체외순환장치인 에크모도 적용했지만 환자의 생사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최악의 순간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함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이영석 교수는 "일반적으로 나파르씨 같은 상태의 환자는 소생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하루를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설령 소생 한다 할지라도 심정지를 두 차례나 겪었던 환자이기 때문에 저산소성 뇌손상이 심할 가능성이 높아 의식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호자에게도 사망할 가능성이 높음을 이야기했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며 환자 입원 당시를 회상했다.

신장내과 안신영 교수는 "환자는 저혈압 때문에 소변량도 점차 감소됐고, 대사성 산증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 빠른 투석이 필요했다. 또한, 폐부종이 심해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24시간 혈액투석과 에크모 치료를 병행해야만 했다.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의 중환자 다학제 집중치료시스템이 결국 기적을 만들어냈다. 나파르씨의 상태는 입원 다음 날부터 혈압이 안정되고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중환자실 입실 3일째부터는 의식도 명료하게 회복됐다. 심정지를 두 번이나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의식이 명료한 것은 기적이었다.

보호자의 눈물이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입원 1주일 만에 환자는 에크모를 제거했고 8일째 인공호흡기도 제거됐다.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던 환자는 열흘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아직 천천히 회복 중이지만 본국인 프랑스로 돌아갈 채비를 할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이영석 교수는 "중환자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다. 나파르씨는 심정지가 일어났을 때 응급실에서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 올라와서는 신장내과, 흉부외과와의 협업으로 신속하게 혈액투석, 에크모를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중증응급환자의 최적의 치료를 위해 수도권 9개 권역에 15개소의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주축으로 한 여러 임상과가 유기적인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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