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완전표시제 도입 시 국내기업 역차별 우려”

먹을거리 소비자 불신 초래…제도 실효성 먼저 따져야

 

GMO(유전자변형물질)가 들어간 식품에 GMO라는 점을 완전히 표시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정부가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식품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57개 소비자·학부모·농민·환경단체(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가 지난달 12일부터 진행했던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운동'을 시작한 이후 지난 11일 기준 추천인 수 218000여 명에 이르렀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제는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추천을 얻은 청원'에 대해 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 등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공식 답변을 내놓도록 하고 있다.

GMO 완전표시제란 GMO 식품에 대해 원재료를 기준으로 GMO 포함 여부를 표시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재료에 GMO가 들어갔는지는 상관 없이 완제품 단계에서 GMO 유전자가 남아 있는지만을 표시한다. GMO 원재료를 써도 제조 과정에서 GMO 유전자가 파괴되면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달 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소비자 알 권리, 선택할 권리 보장과 생산자 보호를 위해 현행 GMO 표시 개정을 해야 한다며 청원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식용 GMO를 연간 200만톤 이상 수입한다. 국민 1인당 매년 40kg 이상의 GMO를 먹고 있다. 현행법은 GMO 사용 여부를 강제 표시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는 해당 상품의 99.99%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Non-GMO 표시도 불가능하다. GMO인지 Non-GMO인지 표시가 없어 소비자 알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표시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무관심, 무능의 결과이며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GMO 표시 개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밝혔다.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 공공급식, 학교급식에서의 GMO 식품 사용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시민청원단은 청와대에 GMO를 사용한 식품에는 예외 없이 GMO 표시 공공급식, 학교급식에는 GMO 식품 사용 금지 Non-GMO 표시가 불가능한 현행 식약처 관련 고시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 수가 20만명이 넘자 식품업계는 제도를 도입하면 서민과 식품업계, 나아가 국가경제 모두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번 청원과 관련해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하면 식품업계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과학적 검증한계를 무시한 GMO 완전표시 요구는 무리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의 과학적 기준에 따라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소비자 득실,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 관리여건 마련 등이 먼저 뒤따라야 한다는 게 협회 측 의견이다.

그동안 GMO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점도 주요 근거다. 지난 2016107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GMO 안전성을 지지하고 그린피스의 GMO 반대운동의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미국 과학한림원(NAS), 세계보건기구, 유럽연합, 미국의사협회, 영국왕립학회 등 주요 국제기구와 학회, 정부에서도 GMO 안전성을 입증한 바 있다.

 

기업 수용 능력, 제도적 기반 선행돼야

현재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일본은 원료 단계에서도 상위 5개 원료에 대해서만 GMO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어 우리나라보다 규제가 덜한 편이다. 유럽연합(EU)GMO 완전표시제를 시행 중이지만 기업들 간의 규약일 뿐 정부에 의해 강제되지는 않는다.

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GMO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소비자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GMO완전표시제 시행은 오히려 국내 먹을거리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혼란과 불신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내 식품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되면 소비자들이 GMO 표시를 하지 않는 수입식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식품산업 생산비용과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의 생산비용 증가뿐 아니라 최대 12500여 명의 고용감소가 우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보고서에서 물가상승과 소비 양극화, Non-GMO 수급 문제, GMO 안전성 관련 잘못된 인식 확산, 미국과의 통상 마찰 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지금은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사후관리 능력과 식품업계의 수용능력을 고려한 제도적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서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제 바로알기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식약처에서 유럽, 일본 등과 동일한 방법으로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을 심사한 후 안전성이 확인된 유전자변형식품만 수입·유통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한편 일부 소비자단체에서는 GMO 완전표시제 도입과 함께 GMO 연구 또한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GMO 연구를 중단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장렬 전문연구위원은 하나의 GM(유전자변형) 작물을 상업화하기 위해선 약 13600만달러의 연구비와 1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지금 GMO 연구를 중단하면 나중에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에서 비싼 로열티를 주고 GMO 기술을 사와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 연구위원은 “GM 작물은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전체 농지의 약 12%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한 건의 안전성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GM 작물이 식물 질병 퇴치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면서 GM 파파야와 GM 바나나를 예로 들었다. GMO 기술이 하와이 파파야를 구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바나나 공급의 47%를 차지하는 캐번디시 바나나를 전멸 위기로 내몰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세균성 마름병) 예방에도 기여할 것이란 의견이다.

경희대학교 식품공학과 김해영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GMO 연구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과거엔 제초제 저항성 콩 등 생산자를 위한 GM 작물이 주였으나 최근엔 건강 기능성을 가진, 소비자·수요자 중심의 GM 작물 개발에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GM 작물 개발의 중심축이 농업용에서 화장품·의약품·바이오에너지 등 산업소재·환경정화·환경보전 등을 위한 작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예로 지카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GM 모기, 호주에서 개발한 GM 파란 카네이션, 일본의 GM 파란 장미와 파란 국화, 케냐의 GM 안개꽃, 브라질의 GM 바이오에너지 생산 GM 나무, 일본의 사람 화분증 완화 GM 쌀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GMO 연구나 개발을 놓고 찬반 양측이 과도한 갈등을 빚기보다는 소비자와 전문가가 함께 위해성 평가에 참여하는 등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원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