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식품은 과연 건강의 보증수표일까

[보건포럼] 이철수/한국식품과학연구원연구기획사업단/HACCP컨설팅팀장

건강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한국인의 건강에 관한 관심은 좀 유별난 편이고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음식의 역할을 꼽고 있다. 식당에 가면 그 식당의 전통과 가치보다는 특정 식재료의 효능을 주장하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띄고, 해외 전시회를 통해 한식을 소개할 때도 문화적인 측면보다도 건강이나 기능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인은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먹는 식사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급하게 식사를 하다 보니 우선 좋은 식품과 나쁜 식품으로 나누는 습관부터 배워왔다. 그렇다고 우리의 식문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나누는 기준은 정말로 비과학적이고 일관성도 없다. 이 사람 다르고 저 사람 다르며,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나마 일관성이 있는 주장은천연 식품은 좋고, 가공식품은 나쁘다정도일 것이다. 현대인의 천연 식품에 대한 사랑은 정말 각별하다. 그래서 가공식품회사마저 천연과 자연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첨가물도 천연첨가물, 합성첨가물로 구분해 관리할 정도이다.

자연을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고향으로 여기고 그리워한다. 많은 이들은 하루 빨리 복잡한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과거의 식품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식품이었기에 안전하고 건강이 좋은 것들이었는데, 산업의 발전으로 가공식품이 등장하면서 현대인의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제염보다는 천일염, 정제당보다는 천연 꿀 같은 가공이 덜 된 식품을 먹어야 안전하고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주장대로라면 농약없이, 첨가물없이 천연식품만을 먹었던 우리선조 조선인의 수명은 적어도 현대인 보다는 길거나 비슷해야 하지만 놀랍게도 조선인의 평균수명은 ‘24였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가장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투투나무가 자생하는 뉴질랜드 지역에서 늦은 여름에 생산한 벌꿀은 투틴(Tutin)이라는 독소를 함유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네팔산 야생꿀(석청)을 먹고 안면마비나 사망 사고가 난 경우도 있었다. 네팔의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야생철쭉의 그레이아노톡신(Grayanotoxin)이 꿀로 옮겨져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미국 벌꿀을 조사해보니 약 13%가 보툴리눔균에 오염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보툴리눔균은 세상에서 가장 맹독성 독소를 만드는 균으로 아직 장내세균이 잘 자리 잡지 못한 유아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빈번한 식품사고 중 유럽에서 발생했던 장출혈성대장균의 원인으로 무싹채소를 지목한 것과 중금속과 독성물질도 대부분 천연식품에 더욱 문제인데도 이러한 사실에는 눈을 감고, 가공식품이나 첨가물에 대해서만 민감하다. 이처럼 우리가 천연식품하면 무조건 뭔가 특별함과 신비가 있으며 합성하면 뭔가 문제가 있을 것처럼 느낀다.

사실 요즘 가공식품은 모두다 충분히 안전하다. 그리고 특별히 훌륭한 음식도 아주 나쁜 음식도 없다.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즐겁고 행복하게 적당히 적게 먹는 것이지 특별한 효능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밥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먹거리에 대해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실 식약동원이라는 말은 식품을 폄하하는 또 다른 뜻이 담겨있다. 약은 아플 때나 필요한 화학물질이지 건강할 때는 전혀 필요 없고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물질은 아니다. 음식은 생존의 필수 요소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음식이 건강의 충분조건도 아니다. 음식이 약으로 작용할 때는 우리 몸이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이고, 음식이 약으로 작용하지 않는 상태가 오히려 건강한 상태인 것이다.

최근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천연식품, 기농식품을 고집하는 우리에게 과연 천연식품이 건강을 담보하는 보증수표인지 반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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