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홀씨를 따라 보낸 세월들”

[보건포럼] 서정선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석좌 연구교수/ 공우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

오늘 스승님들과 여러 선배,동료,후배 교수들께서 모인 자리에서 퇴임행사를 할 수있게 해준 학교당국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정년퇴임이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기는 하나 연금선택이나 방을 정리해야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접하면서 실제 퇴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오랜 세월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년과 함께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경험하면서 나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보낸 47년은 나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얼마전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처럼 “모든 날이 좋았다. 그것은 축복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퇴임을 하면서 47년전 예과때 좋아했던 ‘광장’이란 소설의 서문이 생각납니다. “세상에는 많은 풍문이 있다. 인생을 풍문듣듯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풍문을 확인하러 길을 떠난다. 우리는 그곳에서 운명을 만난다. 운명을 만나는 곳을 광장이라 한다.”

나는 연건에서의 47년을 이 서문과 대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DNA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풍문을 들었다. 나는 풍문을 확인하기위해 길을 떠났다. DNA라는 민들레 홀씨를 따라 가면서 만난 인연들. 그 인연들이 모여 나의 운명이 되었다. 이제 나는 광장을 떠나려한다. 연건을 떠나지만 나는 다시 DNA홀씨를 따라 갈것이다.”

광장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은 나의 평생의 스승이신 일천 이기영교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결국 일천선생님의 DNA집념은 일천연구소로 이어져 50년후 2009년과 2016년에 게놈DNA분야에서 두편의 Nature 논문의 결실을 만들었습니다.

김승원교수님과 채범석선생님과의 만남도 생각이 납니다. 두분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평생 갚지 못 할 빚을 많이 졌습니다.

70년대 한국에서 생화학을 한다는 것은 무모함 그자체 였습니다. 연구비부재의 시대에서 술로 좌절을 달래던 시절입니다. 올해 95세이신 제 어머님께서 “얘가 공부를 하러 생화학에 갔나 술을 마시러 갔나.”하시며 속상해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생화학은 실험과학이라 연구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1989년에 처음으로 9억(3년)의 큰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1993년에 유전자이식 생쥐 연구로 9년동안 60억정도 받았습니다. 2003년에는 몽골리안 게놈프로젝트로 6년동안 42억을 받았습니다.

정부로부터 받은 대형 정책연구비만 해도 총110억을 넘게 받았습니다. 여기에 민간회사와 재단에서 받은 30억씩 두번의 기부연구비까지 합치면 총 170억이 됩니다. 연구자로서 시대를 만난 것 그것이 행운이었습니다. 40년전 오기로 기초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거의 상상조차 할수도 없던 액수입니다.

IMF경제 위기때 G7연구비를 많이 받은 죄로 벤처회사를 만들어 실적을 보이라는 과기부의 몇차례 강요로 마크로젠을 창업했습니다. 2000년 서울대에 시가 45억정도의 주식을 기증하였습니다. 40년동안 서울대에서 받은 월급은 모두 되갚은 셈입니다.

실험실을 함께한 제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모든일을 동고동락했던 죽을때까지 못 잊을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하신 모든 분들게 무한한 존경을 표하면서 저는 이제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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