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이어 증후군

살다보면 험악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큰 고통으로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싸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게 된다. 세월이 약인 것이다.
올해 36살인 김영숙씨(가명). 김씨는 죽음을 생각했을 만큼 괴로운 현실과 맞닥 뜨렸다. 딸만 일곱인 행복하고 수다스런 가정의 네번째로 태어난 김씨는 24살 나던 지난 83년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경험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매달 있어야 할 생리가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으나 감감무소식. 무슨 일인가 싶어 병원을 찾았고 거기서 여자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외부생식기도 여성기 모습이었으며 가슴도 작지만 나와 있었고 몸매도 여성적 이어서 누가 봐도 여자인 그에게 의사는 남자라고 판정했던 것이다.
목소리도 곱고 웃을 때 보조개가 예뻤던 김씨는 그 당시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여자에게 여자가 아니라니.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삶에 대한 회의가 왔다. 절망보다, 참기힘든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사는 것에 대한 회의였다. 살만한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잘생긴 남자를 볼 때면 가슴이 두근 거렸던 꿈많은 소녀가 사실은 남자였던 사실은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있었다’는 소설처럼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자매의 불행

의사는 딸 모두를 검사해 보자고 했다. 유전질환 가능성이 크니 혹 다른 자매에게도 이같은 해괴한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네째 였으나 유난히 자립성이 강했으며 효녀였던 김씨는 자신의 문제로만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족얘기가 나오자 자신의 고통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부모가 혹은 동생이 겪는 고통은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는 딸이 아니라는 말에 한참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으나 곧 현실을 받아 들이고 나머지 6명의 딸들과 함께 상경했다.
그들은 곧 염색체 검사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21살인 다섯째와 18살인 6섯째에서 김씨와 똑같은 이상이 발견됐다. 딸만 일곱인 가정이 실제로는 4녀 3남의 가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섯째의 삭상성선(발달되지 못해 흔적만 남아있는 성선)에 악성종양이 관찰됐다. 의사는 곧 다섯째의 성선(자궁과 난소, 퇴화된 고환)을 제거했다. 여섯째도 다섯째와 같이 예방차원에서 이들 고환 구실을 못하는 성선을 없앴다.
아주 잠깐 동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마치 장마와 태풍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쓸고 가듯이 그렇게 한 가정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난 과거의 흔적이 너무 커 쉽게 상처가 아물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약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흔들리던 가정도 안정을 찾아갔다.
89년 넷째딸은 꿈에 그리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결혼했다. 결혼 전 그는 처음 병을 진단했던 의사를 만나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내부 성기를 진단한 의사는 질이 짧지만 성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이며 음모가 적으나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외부성기 모양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딸이 아들로

행복했다. 언제 그런 고통과 불행이 있었냐는 듯 김씨는 남부럽지 않은 결혼 생활을 했다. 여기에 토끼같은 자식 하나만 있었으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기대일 뿐이다. 생리를 한적이 없는 김씨는 아기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궁과 나팔관도 작아 난자가 생성된다 해도 정상적인 임신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철없는 남편은 자신을 닮은 아기를 원했다. 김씨는 결혼 이듬해 다시 의사를 찾아왔다. 그리고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힘없이 물었다. 의사는 김씨의 행복을 위해 시험관아기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네 번 실패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막내동생의 난소를 제공받아 남편의 정자와 결합하는 인공수정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에서 세번째,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뛰면서 기뻐했다. 아내가 XY염색체를 갖고 있는 남자인지 혹은 난소이상 때문에 임신을 못했는지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둘은 사랑했다. 그리고 임신했으며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김씨의 병명은 스와이어증후군(Swyer syndrome), 스와이어 증후군은 염색체 검사상 남성염색체인 46,XY로 나타나나 외견상 여성의 외양 및 외부 생식기를 보이는 이상 성 발현 증후군으로 46,XY 순수성선 이형성증이라고도 한다.
이 질환은 성분화의 기전을 밝히는데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어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태생초기(6주정도)는 성선 발달이 안돼 고환인지 난소인지 구분이 되지 않으나 6주부터 분화돼 고환가 난소가 결정된다.

남자 임신 국내 첫 성공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진용 교수는 “이 사이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선분화가 안돼 고환 미성숙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나오지 않아 중성의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중성의 경우 여성쪽에 가깝다. 목소리도 여성적이다.)
염색체는 XY이지만 고환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흔적만 있으며 외성기는 여성미 모양을 하고 작지만 나팔관과 자궁, 질도 있다.
무월경이며 음모도 거의 없고 빈약한 유방발달을 보인다. 성호르몬의 결핍으로 골단판의 폐쇄가 늦어져 키는 보통보다 크고 팔다리도 긴데 이는 다른 형태의 성선 이형성증인 터너나 모자이시즘과 다른 점이다.
원인은 유전적 소인 혹은 남성을 결정하는 유전자인 SRY(Y염색체의 단완 말단부에 존재)의 발현이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SRY 유전자가 결손되거나 변이가 있는 환자가 있는 반면 정상적인 SRY 유전자가 존재하는 환자도 있고 더욱 변이가 있는 SRY 유전자를 가지면서도 정상 남성인 경우도 보고 되고 있어 이 질환의 유전자 양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교수는 “이차성징의 발달을 위해 평생 여성호르몬을 사용해야 하며 환자의 25%에서 악성종양이 발생하므로 진단 즉시 삭상성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궁의 크기는 작으나 성호르몬에 반응을 보이므로 난자 공여로 임신할 수도 있다”며 “다만 이 경우 태어난 아기가 법적으로는 모자관계를 형성하나 의학적으로는 남의 아이여서 이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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