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의료사법 리스크 세계 최고…"보상 중심 전환 시급"

국회 공청회서 전문가 지적…"형사고소 남용 필수의료 붕괴 불러"
일본·뉴질랜드 사례 주목… "특례법·무과실 보상제 도입 검토해야"

김아름 기자 2025.09.09 09:51:16

"최근 5년간 735명의 의사가 형사 입건됐지만, 실제 유죄 판결은 약 20명에 불과합니다.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수년간 겪는 고초, 그 과정 자체가 의사에게는 처벌이며 필수의료 붕괴를 부르는 진짜 원인입니다."

대한민국의 의료분쟁 시스템이 과도한 형사소송 남용으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사법 리스크'에 처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 중심에서 '보상과 조정'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날카로운 지적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와 국회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의료사고 민·형사 소송 전반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외 방대한 통계와 판례를 근거로 한국 의료 시스템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과정 자체가 처벌"…형사고소 남용이 필수의료 붕괴 불러

서종희 교수는 "의료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책임을 묻는 '수단 채무'임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하면 형사고소를 통해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며 문제의 본질을 짚었다.

그는 "실제 기소율이나 유죄율은 낮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입건 및 송치 건수가 현저히 높다"면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수년간 이어지는 소송 과정의 고통이 의사들을 방어 진료로 내몰고, 이는 동료 의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결국 필수의료 시스템 전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사소송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 교수는 "긴 소송 기간과 낮은 승소율(약 50%), 기대에 못 미치는 배상액 등은 환자의 신속한 피해 구제를 어렵게 한다"며 "'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소액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결은 양측의 부분적 양보를 유도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오노병원 사건' 후 급감, 뉴질랜드는 '국가 보상'

서 교수는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시스템의 특수성을 부각했다.

그는 "일본은 2004년 산부인과 의사가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오노병원 사건'을 사회적 변곡점으로 삼아,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는 데 극도로 신중해졌다"며 "그 결과 형사 입건 자체가 연간 30~40건에 불과하고 기소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은 천문학적인 민사 배상과 책임보험이 발달한 대신 형사처벌은 거의 없고, 뉴질랜드는 국가가 운영하는 '사고보상공사(ACC)'를 통해 의사의 과실 유무를 따지지 않고 신속하게 보상하는 '무과실 보상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한국은 신속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에 비해 의료인이 감수해야 할 사법 리스크는 비교 대상 국가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평가했다.

"패러다임 전환 시급…'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등 도입해야"

서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의료분쟁은 환자와 의사, 양자 간의 문제를 넘어, 미래의 모든 환자와 의료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트릴레마"라며 "형사 처벌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사회적 총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의료인이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중과실이 아닌 이상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형사 책임은 고의·중과실에 한정하고, 민사 책임 서비스를 개선해 손해의 완전한 전보에 집중 ▲필수의료 분야에 한해서라도 '무과실 보상 제도' 도입 검토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서 교수는 "입법 기관이 사회적 이익의 '중용'을 찾아, 처벌이 아닌 조정과 보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체계를 만들어야만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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