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조제 간소화·성분명 처방 강행, 의약분업 근간 흔든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국회·정부 강력 규탄… "법안 강행 시 의약분업 폐기 불가피"

김아름 기자 2025.09.08 16:27:40

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환자들이 제때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가 대체조제 간소화와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강행하려 하자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는 최근 성명을 내고 "이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약계·정부가 합의한 의약정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법안이 강행된다면 의약분업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현재 의료현장에서 가장 큰 혼란은 필수의약품의 반복적 품절이다. 주사제·소아용 약제 등은 특히 취약하다. 병의협은 그 원인으로 ▲원료 및 완제품 공급 불안정 ▲제조·품질 문제 ▲정부의 관리 부재 ▲낮은 약가 정책 등을 꼽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약가 정책은 '이상한 역전 현상'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리지널 약제 가격은 주요 7개 선진국 대비 64~66% 수준으로 낮은 반면, 제네릭은 오리지널의 절반가량으로 책정돼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제약사의 생산 유인이 떨어지고, 일부 품목은 공급 중단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국회 해법은 '대체조제 간소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체조제 간소화와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부터 약사가 대체조제 사실을 심평원에 통보하면, 심평원이 이를 의사에게 다시 전달하는 간소화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미 관련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의사와 약사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제 변경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심평원을 거치는 간소화 방식이 시행되면, 환자가 약제 변경 사실에서 소외되고 의사는 뒤늦게 통보받아 약화사고에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환자가 무방비 상태에 놓일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는 것이 병의협의 경고다.

여기에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은 수급불안정 의약품의 경우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병의협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선택한 약제가 실제로는 어떤 제약사의 제품으로 조제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며 "의학적 판단에 심각한 제약이 생기고, 선의의 처방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전 세계 어디에도 단순히 성분명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더욱 격앙되는 이유는 '의약정 합의'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 의료계·약계·정부가 함께 도출한 합의안에 따라 대체조제 원칙이 마련됐다. 병의협은 "재합의 과정 없이 원칙을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곧 의약정 합의 파기"라며 "그렇다면 의약분업 제도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병의협은 의약품 수급 문제의 해법으로 ▲오리지널 약제와 제네릭의 비정상적 상대가격 교정 ▲원가·품질 반영한 제네릭 상환체계 재설계 ▲단일 낙찰 완화 및 공급망 다변화 ▲필수의약품 일정 재고 의무화 ▲생산 부진 품목 인센티브 제공 등을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환자 안전을 생각한다면 근본적 원인인 약가 정책과 공급 체계부터 손봐야 한다"며 "대체조제 간소화와 성분명 처방 의무화 같은 황당한 정책은 문제 해결과 무관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25년간 지켜온 합의조차 무시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법안을 강행한다면, 의약분업 폐지를 포함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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