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제, 이름만으론 안된다… 본질부터 다시 짚어야"

가정의학과의사회 강태경 회장, 취임 4주년 간담회 열고 보건의료정책 비판
"주치의 제도, 정확한 정의없이 시행하면 혼란 불가피… 단계적 도입 촉구"
"개원 허가제·초진 비대면 진료 국민 건강권만 위협, 전면 철회" 주장도

김아름 기자 2025.07.31 09:02:29

"주치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제도입니까."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가 정부의 주치의제 도입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개념 정립 없이 서둘러 추진될 경우, 의료전달체계에 혼란만 초래할 것이란 우려다. 

강태경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장은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치의제는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핵심 제도이지만, 현재 논의는 본질이 빠졌다"며 "단순히 만성질환 관리에 국한시키는 접근은 환자 중심 의료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시한 시범사업 형태의 주치의제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일부 선택 참여 의료기관을 통해 관리 수가를 지급하는 구조다. 그러나 강 회장은 "지금처럼 진료권이나 처방권이 제약되는 구조라면 의료인은 책임만 지고 권한은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의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외래 중심의 1차의료 강화 없이 주치의제를 얹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이라며, 일차의료 인프라에 대한 실질적 투자와 환자 중심 전달체계 재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형 주치의제도가 기존 행위별 수가제 틀 내에서 환자가 자유롭게 주치의를 등록·변경할 수 있는 선택형 제도로 설계돼야 하며,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는 정액보상을, 특수 진료에는 추가보상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강 회장은 "이 같은 방식은 제도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현 시스템과의 충돌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택의료와 비대면 진료도 주치의 중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시됐다. 재택의료의 경우 환자의 질병, 건강상태, 복지까지 이해하고 통합적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주치의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비대면 진료 역시 진료 환자가 아닌 재진 환자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치의와 환자 간 신뢰 기반이 비대면 진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회장은 "단순히 '주치의'라는 말에 두려워할 필요도, 잘못된 오해로 제도 도입을 회피할 이유도 없다"며 "현 정부가 주치의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가정의학과는 보다 선제적으로 제도의 구성과 세부 내용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대정원 확대처럼 정부가 갑작스럽게 제도를 밀어붙일 경우, 국민과 의료계 모두 큰 혼란을 겪게 된다"며 "전면적 도입보다는 노인과 장애인 등 일부 대상부터 점진적으로 제도를 보완·확대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정의학과의사회는 정부가 검토 중인 개원허가제와 개원면허 도입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강 회장은 "개원허가제는 얼핏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무분별한 개원 방지를 위한 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의료 접근성을 저해하고 의료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기관 신설에 대한 정부 통제가 신규 개원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에서 자율적 개원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경쟁 위축으로 의료기술 혁신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 면허를 취득한 의사에게 다시 개원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중 규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개원허가제는 특정 지역이나 분야에 대한 허가권이 정부에 집중됨으로써 부패 가능성과 특혜 논란이 커질 수 있다"며 "의료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국민 신뢰를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의료전문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의료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도 강 회장은 "의협이 제시한 ▲대면진료 보조수단 ▲재진 중심 ▲의원급 중심 ▲전담기관 금지라는 4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비대면 진료 확대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초진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는 정확한 진단을 어렵게 하고, 오진과 부작용 가능성을 높여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비대면 진료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징후들을 놓치게 되며, 영상 통화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 정부가 커뮤니티케어나 재택의료를 통해 지역사회 통합의료를 강화하려는 기조와 비대면 진료 확대 정책이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대면을 기반으로 한 재택진료와 달리, 비대면 진료는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환자를 분리시키고, 의료쇼핑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영리 목적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강 회장은 "플랫폼 기업들이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진료를 유도하고, 의약품 판매 중심의 의료를 전개할 위험이 있다"며 "이들이 커질수록 의사와 의료기관은 플랫폼에 종속되고, 의료의 본질과 자율성이 훼손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비대면 진료가 편의성만 강조한 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초진 허용 방침을 철회하고, 환자 안전을 최우선에 둔 신중한 비대면 진료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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