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의 출현은 전 세계 공중보건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는 도시화, 생태계 파괴, 야생동물 접촉 증가 등 인간 활동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기후변화는 모기·박쥐 등 감염병 매개체의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으며, 전 지구적 이동성과 밀집 환경은 바이러스 확산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단순히 치료와 통제에 그치지 않고, 감염병을 미리 예측하고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인공지능(AI)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이에 정부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선제 방역' 체계 마련에 집중했다. 먼저 해외유입 차단을 위해 공항 검역과 하수도 기반 감시체계를 확대하고, 11종 호흡기 감염병에 대한 표본 감시기관을 전국 300개소 이상으로 늘렸다. 사망표본 감시도 신규 도입돼 중증·사망자 발생의 조기 경보 기능이 강화됐다.
또 검사와 역학조사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현장 적용 가능한 진단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단순 진단을 넘어, 예측과 선제 대응이 가능한 체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R&D 강국이자 규제 선진화의 토대 위에서 국내 기업들은 실시간 다중 감염병 판별, 변이 감시, 현장 진단 플랫폼 개발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씨젠, 코센바이오텍, SD바이오센서 등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이미 진단을 넘어 예측과 모니터링까지 통합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나라는 분자진단기술(PCR) 기반의 빠른 키트 개발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이는 진단기기 기업의 기술력에서 비롯됐다.
대표 기업 씨젠은 한 번의 검사로 여러 병원체를 동시에 검출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PCR 기술을 앞세워 빠르고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3개 유전자를 동시에 진단하는 키트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전 세계로 수출을 시작했다.
또 다른 기업 코센바이오텍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국내 첫 긴급사용승인 키트를 확보한 뒤, 인플루엔자, MERS 등 과거 감염병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한 진단 솔루션을 제시했다. 현장 대응이 가능한 항원·항체 기반 키트를 중심으로 SD바이오센서도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며, '응급 진단'분야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진단기기 업계는 이제 단순 진단을 넘어 감염병의 출현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접목해 검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염병 위험 지역을 사전 예측하거나, 하수·공기 샘플을 분석해 바이러스 징후를 포착하는 '비임상기반 감시 기술'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임상 진단 시장도 정밀의료 시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임상용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 NGS)는 조기 진단과 맞춤 치료에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으며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NGS 기술이 동일한 시료에서 수천에서 수백만 개의 유전자 정보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고성능 분석 역량을 갖춤 것이 장점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글로벌 임상 진단의 전망과 NGS 시장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AI 기반 CDx 고도화와 MRD 감지 솔루션, 디지털 헬스 연계, 신흥시장 진출 등 4가지 핵심 성장 전략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암, 감염병, 유전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서 조기 진단, 예후 예측, 모니터링, 재발 감지에 이르기까지 임상 진단의 역할이 확대됐다.
정부도 이 같은 기술을 민간과 협력해 제도권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확대 중이다. 식약처는 2024년부터 체외진단의료기기 인증체계를 유럽 IVDR 수준으로 개편해 품질 중심의 평가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도 빠른 대응 전략에 나섰다. 의료기기 기업들과의 협업 속에서 병원은 데이터 기반 감염병 예측과 차세대 진단기술 개발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오니아, 수젠텍, 미코바이오메드 등 체외진단기기 전문기업들은 품질관리(QMS), 글로벌 인증 대응 전담팀을 조직하고, 미국 FDA·유럽 CE 외에 WHO PQ 및 MDSAP 인증까지 병행하고 있다. 또 올해 5월 기준 총 110개 기관이 임상적 성능시험 기관으로 지정돼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대안암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이 국가 R&D, 신제품 검증의 기반 역할을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