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비자 니즈에 맞춘 혁신제품 신속 출시 저해
화장품산업 양적·질적 성장, 정부주도 효능관리 한계
국내 화장품 산업의 혁신·창조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규제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K-뷰티가 세계 화장품 트렌드를 선도하고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현재의 정부 주도형 규제 체계를 민간 주도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특히 화장품업계는 혁신 제품의 개발을 저해하고 새로운 제품의 시장 진입을 지연시키는 기능성화장품 사전 심사·보고 제도의 폐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K-뷰티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한류 확산을 기반으로 세계 화장품 수출 3위 국가로 빠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로컬 브랜드의 급성장과 K-뷰티의 경쟁력 감소, 러-우 전쟁 장기화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 등으로 지난해 화장품 수출은 약 13% 감소하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제는 K-뷰티라는 타이틀만으로 중국 수출 특수를 누리는 호황기는 끝났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K-뷰티가 재도약하려면 독특하고 혁신적인 제품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혁신·창조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한화장품협회 이명규 부회장은 최근 출입기자 브리핑을 통해 "K-뷰티 주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의 장기 불황으로 인해 K-뷰티도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국내 화장품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 화장품 트렌드를 이끌어 갈 혁신기술과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진국형 규제혁신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사전관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능성화장품 심사·보고 제도 폐지도 그 중에 하나"라고 주장했다.
2000년 화장품법 제정과 함께 실시된 기능성화장품 사전심사제도는 당시 의약품 관리 규정 을 준용해 도입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화장품도 의약품처럼 주성분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는 제도로 정착돼 발전돼 왔다.
하지만 의약품이 주성분의 약리작용으로 질병 치료·예방 효과를 나타내는데 반해 화장품은 제품에 사용된 모든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주성분 중심의 심사는 화장품 제품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특히 최근에는 제품의 트렌드와 소비자 니즈가 화학 성분보다는 식물성분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식물성분의 조합을 통한 제품 개발이 활발해졌다. 이 경우 여러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식물추출물을 주성분으로 기능성화장품 심사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이에 따라 출시되는 대부분의 기능성화장품이 이미 고시된 동일 효능성분을 사용한 제품으로 획일화돼, 기능성화장품으로서의 소재와 효능효과가 차별화되지 못하게 됐다.
또한 기능성화장품 제도는 제품 유효성에 대한 검증 책임이 정부에 있으므로 새로운 효능 성분을 사용한 혁신 제품의 경우 검증 과정과 요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업체에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 개발보다는 쉽게 기능성화장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고시성분을 사용한 미투 제품을 양산해 국내 시장의 제품 획일화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사전 심사제도가 소비자나 업계를 위한 제도가 되지 못하고 정부와 업체 모두에게 비용만 증가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기능성화장품 제도 도입 이래 신규 효능 성분의 기능성화장품 심사 품목의 출시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실제 기능성화장품 95%는 보고 품목이며, 보고 품목 중에서도 동일한 효능 고시 성분을 사용한 품목이 90%를 넘고 있다(협회 집계).
중국 외 전 세계에서 화장품 효능에 대해 정부가 사전 심사·허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가 없다는 것도 기능성화장품제도 폐지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의 사전 심사·허가는 중국의 특수화장품과 우리나라 기능성화장품뿐이다.
이명규 부회장은 "기능성화장품 심사·보고 제도는 단계적으로 미백, 주름개선, 제모제 등을 중심으로 기업 효능 실증 책임으로 전환하고, 그 다음 순차적인 전환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제도 폐지 수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기능성화장품 폐지에 따른 안전관리체계 확대에 대해서도 "폐지되는 기능성화장품 품목부터 현재 영유아·어린이화장품 안전관리 수준을 적용해 단계적으로 확대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